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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

"ESL도 없이 물류부터 시작한 인생 리셋기" Ep.2

2025.07.29 - [회사생활] - “ESL도 없이 물류부터 시작한 인생 리셋기”

“왜 한국 회사를 떠나 이곳까지 왔냐고요?”

(군대보다 더 힘들었던 직장생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누군가는, 꽤 안정적인 길을 걸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어렵사리 대형 건설사에 입사했다. 어깨에 힘 좀 들어갔던 그 시절, 입사 소식을 전하자 부모님은 뿌듯해하셨고, 친구들은 “이제 너도 성공한 거네”라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나도 그땐 정말 그렇게 믿었다. “이제 내 인생도 궤도에 오르겠구나.”

하지만 입사 후 몇 개월, 그 믿음은 허물처럼 무너져 내렸다.

건설이라는 업의 특성상, 거칠고 터프한 사람들과 거친 환경이 일상이었다. “현장직”이라는 말이 이토록 사람의 결을 벗기고 본성을 마주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매일 밤 반복되는 술자리.
회식이라는 이름 아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이어지는 술과의 전쟁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정도는 한국 사회에서 어른이면 다들 겪는 거야.”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참고 버텨야지.”

그 말, 나도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나에겐 그 술이, 군대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억압받는 군생활 속에서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라는 생각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회식은 끝나지 않았다.
직함만 달라질 뿐, 매일의 밤은 같은 얼굴, 같은 자리, 같은 잔 돌리기의 반복이었다.
그 잔을 거절할 용기를 가질 때쯤엔 이미 ‘이기적인 놈’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고, 그 낙인은 조용히 내 커리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지쳐갔다.
무언가가 내 삶을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도망치자.”

처음엔 잠깐 쉬었다 돌아오자고 생각했다.
한두 달 머리 식히고, 다시 도전하자고. 그러던 어느날 강남 한복판에 쓰여있던 간판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캐나다이민 전문" 

아무생각 없이 상담을하였고, 나도 모르게 티케팅 까지 마무리를 한 상태였다. 
상담 후 어느순간 내 몸은 이미 캐나다행 비행기에 이미 실려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잠깐의 ‘쉼표’가, 내 인생의 ‘줄 바꿈’이 될 줄은 몰랐다.

캐나다는 나를 정리하지 않았다.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어눌한 영어, 어색한 행동, 낯선 피부색, 어정쩡한 표정조차도.
여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사는 삶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삶을 원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자유롭고 싶었다.


"괜찮은데요?"를 외쳐야만 살아남던 사회에서 벗어나,
“나는 이게 불편한데요”라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여주는 이곳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영어 한마디 없이 시작한 물류회사 일,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쉽지 않은 나날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했던 건,
적어도 이곳에서의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입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어’라는 생경한 언어가, 어느 날부터 내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그 물류회사에서 어떻게 말도 안 통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익히게 된’ 이야기들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ESL도 없이 물류부터 시작한 인생 리셋기" 시리즈, 계속됩니다.

 

https://myview19812.tistory.com/9

 

“ESL도 없이 물류부터 시작한 인생 리셋기”

(다음 편 예고: “왜 한국 직장 때려치고 여기까지 왔냐고요? 거긴 다음 화에서 공개됩니다!”) 2008년 1월, 캐나다 밴쿠버.그 유명한 비의 도시, 그리고 내 생애 첫 캐나다 직장 입성기.밴쿠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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